기타

알 수 없어요 - 만해 한용운

노블롯 2024. 2. 15. 03:57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나는 그리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시를 읽었을 때 마음에 크게 와닿은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님의 침묵을 비롯한 한용운의 시는 구절이 기억날 정도로 좋아했었다.
시라기보다는 산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함축적이지 않으면서도 여느 시보다 간결하게 다가오는 것이 신비했었다.
"더할 것도 없고 부족함도 없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이 한용운의 시라고 느껴진다.

한용운의 시 중에서는 특히 이 알 수 없어요라는 시를 가장 좋아한다.

때는 고등학교 3학년, 6월 모의고사 필적확인란에 "연꽃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라는 구절이 나왔었다.
고3에게 너무나 중요한 6월 모의고사, 그것도 첫 과목인 국어였지만 저 구절에 흠뻑 빠져들어 정신을 못 차렸던 기억이 있다.

진흙탕 속에서 무엇보다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연꽃과
푸르고 끝없는 바다의 대비는 그 자체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에서 느껴지는 연약함이 아니라 끝없는 생명의 근원, 절대의 권위가 느껴진다.

나는 20대 초반까지는 절대자나 형이상적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시를 읽으면 왠지 마음이 벅차오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바흐의 음악을 들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역시 신에 대한 찬미를 바탕으로 걸작들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진정한 예술이란 세상을 전부 아는 것마냥 오만한 스무 살에게 신앙과 복종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파괴력"이 있는 듯하다.

(한편 이제는 절대자에 대해 불가지론 내지 있나...? 정도의 생각을 지니고 산다. 기도도 가끔 하고)


사실 이 글을 쓴 계기는 저 구절보다는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라는 구절 덕분이었다.

하천... 관련 글을 1년 이상 안 쓰고 있긴 하지만(ㅎ) 어쨌든 이 블로그는 명목상 하천 관련 블로그니까 저 구절을 언급 안 할 수가 없다.

6월 모의고사를 본 바로 그날 바로 나는 시 전문을 찾아봤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까무러칠 뻔했다.
왜냐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아주 궁금해하던 것, 그러나 내 주변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던 것을 화자가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줄기는 어디서 시작될까?
산? 골짜기? 샘터? 여러 답이 있겠지만, 내가 산에 가서 직접 본 바로는 그 어느 곳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듯하다.
골짜기가 시작되는 그 부분부터 땅 속에는 이미 희미한 지하수의 줄기가 시작되고 있고
습도, 강수량, 지형 등 사람이 전부 파악할 수 없는 미묘한 자연의 조화에 의해 어느샌가 땅 위로 솟아난다.


물의 흐름과 시간이 만나면 콘크리트도 뚫는다


그 물줄기는 아주 가늘고 미약하다.
그러나 시간과 물줄기가 만났을 때 침식이라는 묘한 작용이 일어나고, 그 단단한 철근 콘크리트조차 뚫어버린다.
그러니까 물길을 사방공사니 하는 명목으로 열심히 공구리를 쳐 놓아도 물은 그 나름대로 땅 속으로 흐르다가 콘크리트 "따위는" 우습게 침식시킨다.

근원을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시작하지만 그 속에는 자연이 가진 절대적 힘이 숨어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하천에 대한 관심은 그 절대적 힘의 역설적 연약함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단 두 줄의 시구만으로 그 지점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교과서에 길이길이 남을 시인은, 그리고 민족대표 33인정도 하는 사람은, 범인(汎人)의 시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지니신 듯하다.





2023년 2월경 촬영

집 근처 망우산에 만해 한용운 선생 묘소가 있는데 자주 들러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좋은 시를 많이 남겨주셔서, 또 그 시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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