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1. 하천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떻게 흐르는가

노블롯 2023. 1. 30. 04:44
출처: 금성출판사 티칭백과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인터넷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게임보다도 이목을 끌었던 것은 포털 사이트의 위성지도 서비스였습니다. 지도책으로 하천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여러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물길이 끊어지면 '그냥 끊어졌나보다...'하고 말았어야 했습니다. 반면 위성지도는 우리나라 어디든 마우스 스크롤만 당기면 거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성지도에서도 멀쩡하게 산에서 잘 내려오던 물길이 끊기고 길에 묻혀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도시 지역일수록 심했습니다.

이렇게 계곡이 복개된다.

산에 가서 계곡을 보아도 주택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저렇게 땅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멀쩡히 흐르던 물줄기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물의 순환은 저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땅속으로 스며든 지하수라면 모를까 저렇게 있던 물줄기가 사라져버린다면 강과 바다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저 속으로 흘러들어간 계곡물과 거기 살던 물고기들은 또 어떻게 되는걸까요.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구조물 속 시커먼 어둠과 악취가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 마음 속 깊이 호기심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나 소하천의 복개는 전문적이고 행정적인 내용인데다가 국가 중요시설로 관리되기 때문에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쯤 하천답사를 하는 황화수소님의 블로그를 우연히 접하며 두 번째 충격을 받았습니다.

https://potter1007.tistory.com/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네이버에 2012년 이전의 하천답사 포스트가 있으니 여기에서 검색이 안되시면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시면 됩니다.

potter1007.tistory.com

(위 블로그는 복개된 소하천들의 흐름을 10년 넘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서울 지역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소하천이 다루어졌으며, 주요 광역시 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 복개천의 답사기도 있습니다. 아마추어 하천답사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으로 많은 정보를 갖추고 있는 블로그입니다.)

황화수소님의 블로그에서는 복개된 하천의 합류점에서부터 발원지까지 그 시작과 끝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산 속의 작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다 콘크리트 지하 수로로 복개되고, 여러 지류들이 합쳐지다가 최종적으로 더 큰 하천에 흘러들어갔습니다. 물길이 복개되더라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참 신기하면서도 기뻤습니다.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더라도 물은 계속 흘러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있던 것입니다.

복개천의 90%는 하수관이다. 하수는 1cm 깊이로 흘러도 바닥이 탁하게 보이고 주변 10m 안에만 들어가도 냄새가 진동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현실도 있었습니다. 복개천은 제가 생각했던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이 아니었습니다. 복개천의 90% 이상은 하수관으로 관리됩니다. 우리나라 하수 시스템의 90%이상을 차지하는 합류식 또는 불완전 분류식 하수관은 계곡물, 빗물, 하수를 따로 분류하지 않거나 분류하더라도 사실상 하수와 다를 바 없이 처리합니다.

때문에 산에서 1급수 계곡물이 흘러내려와도 복개되는 시점부터 등급을 따질 수 없는 시궁창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물을 정화하고 순환시키는 햇빛, 식생, 토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라도 복개된 후에는 모기, 바퀴벌레, 시궁쥐 등 해충 정도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전락합니다. 복개 시작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수 방지용 저류조나 침사지에서는 계곡에서 살던 생물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켜켜히 쌓여 썩어들어가는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축산폐수, 도시에서는 생활하수와 산업폐수가 흘러들어갑니다.

그렇게 더렵혀진 계곡물은 강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보통 때는 하수처리장으로 가다가, 비가 많이 와서 하수처리장이 빗물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홍수가 날 때에만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간혹 가다 분류식으로 계곡물 (+빗물)과 하수관을 분리해 둔 곳도 있지만 아주 일부에 불과할 뿐이고 그마저도 환경요소의 부재로 죽음의 하천이 된다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