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왜 큰 비만 내리면 강남에 항상 물이 넘칠까?

노블롯 2022. 11. 26. 04:12

이 블로그를 기록하기로 결심하게 만든 글입니다.

원본은 제 학부 에브리타임에 올렸던 게시글입니다. (https://everytime.kr/370438/v/262756154, 로그인 후 학교 인증을 받아야 읽을 수 있습니다.) 얕은 지식으로 쓰인 비루한 글이고 다시 읽었을 때 스스로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많은 학우분들께서 재밌고 유익하다는 반응을 올려주셔서 참 기뻤습니다. 3~4시간만에 휘리릭 썼던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추천 300개 이상으로 BEST 게시판에까지 올라갔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ㅎㅎ)"를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익명의 학우님들을 상대로 게시한 글이니만큼 경어체가 아닌 반말 구어체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경어로 작성할 생각이지만 원본 게시글을 그대로 기록한다는 취지에서 별도의 수정을 가하지 않고 기록하겠습니다.

 

안녕 에붕이들 나는 지리와 하천에 관심이 많은 에붕이야
강남은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핵심지이자 서울 안에서도 자타공인 상급지로 꼽히는 곳이야
그런데 매년 큰 비가 내리면 강남역 사거리 일대와 반포, 이수, 방배 일대가 물에 잠기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고 있어
당장 2019년이 그랬고, 2020년에도 강남역 일대에 큰 물난리가 났었는데
왜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의 중심 강남이 이렇게 물난리에 취약한지 한번 알아보도록 해

1. 강남의 역사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1957년도의 강남과 용산구 일대 지도야
저기 그려진 퍼런 실핏줄같은게 옛날에는 전부 하천이였고, 그 주변에 파란 땡땡이들은 전부 다 논밭이었음
사진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꼬불꼬불한 하천들이 반포천과 그 지류들이야
지금은 거의 다 복개되어서 땅 속으로 흐르고 있지만 비만 내리면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으키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어
당장 올해가 그랬고, 2020년과 2019년이 그랬고, 2011년에는 우면산에 산사태를 내면서 재벌가 사모님을 희생자로 앗아가기도 했어
강남 뿐 아니라 서울 다른 지역에도 예전에 하천이었다가 복개된 곳이 많은데
강남은 서울에서도 나중에 개발된 곳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유독 복개천이 많은 편이야
예를 들어 비슷하게 구릉지대인 서울시 북동부에는 방학천, 우이천처럼 복개되지 않은 소하천들도 많이 있는데, 강남은 거의 다 복개해서 도로로 쓰고 있어

2. 복개천의 허점
원래 잘 흐르던 하천을 땅 속에 묻어버리면 당연히 문제가 발생해 
하천을 복개할 때는 건설할 때의 편리함이나 신속한 배수를 위해서 콘크리트 지하수로를 땅 속에 묻는 방식으로 복개를 진행해
그런데 이렇게 복개를 해버리면 생태계 파괴, 수질오염은 별론으로 하고
투수율(땅속에 빗물이 스며드는 비율)이 0이 되어버려서 빗물이 전부 복개수로로 흐르게 되어버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하상계수가 엄청 큰 나라라서 여름 한 철에 큰 물이 집중되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여름에 다른 계절의 수십배에서 최대 수백배까지 이르는 빗물을 땅 속의 복개수로 하나로 처리해야 하는거고, 그게 넘치면 바로 어제같은 사건으로 이어지는 거야

(출처: 오마이뉴스)


3. 강남의 지형적 특성
강북과 강남은 비슷하면서도 달라. 강북은 도시개발의 역사가 비교적 오래되어서 평지와 산지의 구분이 크고, 산 꼭대기까지 개발이 이루어진 경우는 흔치 않아. 당장 우리 학교만 해도 무악학사가 무지무지 높은 곳에 있긴 하지만 안산을 전부 먹고 들어가진 않았지?

그런데 강남은 넓은 구릉지대에 도심지가 쫙 펼쳐져있는 독특한 지형을 갖추고 있어 
특히 강남과 서초 일대는 서리풀-몽마르뜨 공원과 매봉산을 제외하면 산이나 야산이라 할만한 곳이 없고 저 아래 우면산, 구룡산, 대모산에 가서야 시가지가 끝나게 되어있어
문제는 이렇게 시가지가 커져버리면

1) 저류지, 유수지처럼 치수시설을 확충할 공간이 모자라게 되고
2) 도심지역의 콘크리트, 아스팔트 포장으로 인해서 땅의 투수율이 매우 낮아져서

저 넓은 지역에 내리는 비가 전부 저지대로 쏠리게 되어버려
그런데 강남도 언덕 위쪽은 대부분 아파트 주택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중심지는 거의 다 저지대에 있어
결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물도 많이 모이게 되면서 침수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거지..

4. 치수시설 확충의 어려움과 님비
어젯밤 핫한 토픽이었짘ㅋㅋㅋ 강남은 상급지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치수가 어려운 지역이야
근데 이건 비단 강남만의 문제는 아니야
빗물펌프장, 지하 복개하수도, 유수지와 같은 치수시설은 사회간접자본(SOC)으로 아주아주 중요한 시설이지만 짓는 데 돈도 많이 들고, 공사도 오래걸리고, 무엇보다 혐오시설이 대부분이야

예를 들어 복개하수로를 생각해보자

(출처: 노컷뉴스)


매년마다 침수되는 강남역 일대의 복개하수로의 모식도야. 딱 봐도 이상하지?
골때리게도 저 곳은 모 대기업이 구청에 압력을 넣어서 하수도에 역경사를 넣어버렸어
당연히 수로에 턱이 있으니 물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매번 넘치는거지
그런데 저 짤에서 공사비 5억이라고 나와있는 거 보여? 저건 하수관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하수관 안에 콘크리트 벽 하나 설치하는데 5억이 드는거야
만일 저 하수도를 파서 새로 묻는다면 공사비, 인건비, 강남 한복판 도로를 막고 땅을 파헤치는 (그것도 수십미터씩) 기회비용, 공사로 인한 소음, 진동, 악취로 인한 외부효과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거고 환산하면 최소 수백 억의 비용이 들거야
그러니까 돈이 넘쳐나는 지자체인 강남구, 서초구조차 매년 물난리가 나는 걸 알면서도 쉽게 손을 못 대고 있는거야

 

(출처: 다음 블로그 https://m.blog.daum.net/2100ys/13415339)

이건 강남, 서울만 그런 것도 아니야. 대표적으로 부산은 온천천이 넘치고 동강에서 악취가 나는데도 큰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사실 부산은 산세가 발달한 지리적 특성이나, 태풍이 잦은 환경, 난개발로 인한 수질오염으로 인해서 치수 분야에서는 서울보다 훨씬 악조건인 상황이야

5. 해결방식은?
물론 지자체도 손만 놓고 있지는 않아
강남역 지하배수로같은 이상한 곳 말고, 대부분의 치수시설은 홍수주기를 계산해서, 20~30년에 한번 일어날 정도의 대규모의 홍수를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넉넉히 만들어놓아
문제는 최근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20~30년에 한 번 일어날 홍수 기록이 매해 경신되고 있다는거야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규모의 홍수가 얼마나 더 자주 날지 아무도 모른다는거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 근본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
2) 복개천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해서 홍수에 더 강한 하천을 만든다
3) 님비와 사회적 비용을 무릅쓰고 치수, 하수시설을 확충한다
의 세 가지 방법 정도가 있을 것으로 보여
사실상 1), 2)는 우리가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고, 결국 3)을 중심으로 나머지 방법을 점진적으로 추구할 수 밖에 없을거야

그러니까 우리 에붕이들은 자원과 환경을 소중히 하고,
집 근처에 치수시설 공사를 하더라도 우리의 안전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라!!ㅎㅎ😇



번외) 홍수가 났을 때 흐르는 물은 정말 똥물일까?🤢
정답은 YES
하수도는 빗물을 따로 흘려보내는지에 따라 크게 분류식 하수도와 합류식 하수도로 나뉘는데
도시개발의 역사가 오래된 서울은 빗물과 하수가 같이 흐르는 합류식 하수도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이말인즉슨,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든, 큰 비가 내릴 때 빗물이든 전부 하수로 처리된다는 얘기야ㅎㅎ..
물론 정말로 그렇다면 큰 비가 내렸을 때 하수처리장이 너무나 많은 양의 물을 처리하지 못하고 뻗어버리기 때문에
합류식 하수도에서도 차집관거라는 것을 만들어서 하수와 우수를 간이로 분류해서, 평시에 쫄쫄 흐르는 계곡물같은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다가
큰 비가 내려서 물이 너무 불어버리면 그냥 하천으로 흘려보내고 있어 
(그러니까 청계천이나 성내천처럼 복원된 하천에 흐르는 물은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아니야.. 진짜 청계천은 하수처리장으로 가고 있어)
만일 하천으로 보내버릴 정도로 큰비가 내렸다면 이미 하수랑 빗물이 섞일대로 섞인 똥물인거지
그리고 보통 도시가 잠기도록 홍수가 일어난 거라면 복개된 하수도가 용량을 버티지 못하고 역류한거라서
집안이나 건물에 물이 넘친 사진들은 그냥 그 건물 정화조가 역류한거라고 생각하면 돼...🤮


세줄요약
1. 강남에 홍수가 생기는 이유는 지리적 요소와 기존 하천의 복개, SOC 확충의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렇다
2. 기후변화로 큰 비가 자주 내리는 것도 한 몫 했다.
3. 착한 에붕이는 환경을 사랑하고 홍수 예방을 위해 경각심을 갖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