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G.B. Pergolresi - Stabat Mater / J.S. Bach - Tilge, Höchster, meine Sünden, BWV 1083

노블롯 2023. 2. 10. 22:50

블로그에 처음 쓰는 클래식 관련 글이다.

예전부터 바흐를 좋아했는데 대부분 기악곡이거나 성악곡이라고 해도 마태수난곡이나 미사 B단조 등 대규모 오라토리오를 중심으로 들었었다. 대중음악이랑 비슷하게 바로크 음악 특유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보컬에 묻히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바로크 음악의 이론적 구조를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냥 내가 듣기에 좋냐 아니냐 기준!!)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 쓰는 클래식 글이 기악곡도, 오라토리오도 아닌 성악곡이다. 

블로그에 리뷰를 남기고 싶은 클래식도 많지만, 두 곡의 관계가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음악 자체의 완성도도 높기 때문에 꼭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 두 개의 곡은 별개의 곡이 아니다. 반주에 있어서 약간의 편제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멜로디에 가사만 다르게 해서 붙인 것이다. 원곡자는 바흐가 아닌 페르골레지이다. 먼저 듣게 된 것은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였는데 처음 듣자마자 바흐의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할 때 뇌 빼놓고 바흐 전집 등 클래식 들으면서 할 때가 있는데 그 때 들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근데 찾아보니 바흐 노래가 아니었당...

 

 

1.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

 

https://youtu.be/BTHwodbnTrs

스타바트 마테르

스타바트 마테르는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라틴어로 어머니가 서 계시다라는 뜻이다. 정확한 가사는

Stabat Mater dolorosa iuxta crucem lacrimosa dum pendebat Filius라는 구절을 최대한 길게 반복한 것으로,

대충 해석하면 "비탄에 찬 성모께서 예수 매달린 십자가 옆에 서서 통곡하고 계시네" 라는 뜻이라고 한다.

 

 

2. 바흐의 "높으신 분이여, 나의 죄를 사하소서" (Tilge, Höchster, meine Sünden)

https://youtu.be/qeXnGPDTF1c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에 시편 제 51편의 독일어 구절을 붙여서 칸타타를 만들었다.

Tilge, Höchster, meine Sünden, deine Eifer laß verschwinden, laß mich deine Huld erfreun.

직역하면, "높으신 분이여, 내 죄를 사하소서, 당신의 시기가 사라지게 하시고, 당신의 은혜에 기뻐하게 하소서" 정도인 듯 하다.

 

 개역개정 성경 기준 동일 구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근데 이 구절이.. 다윗 왕이 밧세바랑 불륜을 저지른 다음에 선지자 나단을 만나서 회개할 때 나온 맥락이다.

스타바트 마테르가 성모의 모성애와 정결함을 나타내고 있다면, 이 곡은 같은 멜로디인데도 타락한 자가 구원과 회개를 비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사실상 같은 노래인데도 (레코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바흐의 곡이 페르골레지의 곡보다 더 빠른 템포로, 가볍게 레코딩되는 것 같다.

바흐는 왜 성모 마리아의 비탄과 관련된 가사를 회개하는 내용으로 바꾸었을까? 멜로디가 어울려서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라틴어 가사를 독일어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아서일까? 만일 번역의 문제였다면 왜 하필 이 구절을 골랐을까?

 

재미있는 점은 두 작품 모두 14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곡에서 페르골레지의 작품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비탄에 빠진 성모의 모성애와 정결함을,  바흐의 작품은 회개하는 다윗 왕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곡조가 경건하기도 하지만 뭔가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비장함 내지 통속적인 느낌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어쩌면 바흐는 페르골레지의 원곡에서 그러한 느낌을 얻었던 것이 아닐까? 

완전 다른 방향의 가사이지만 두 가사 모두 곡조에 찰떡같이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을 많이 접하기도 했고 대학에서 반강제적으로 기독교 관련 강의를 듣기도 했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으로 (무학임에도 신앙의 부재를 이유로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종교를 거부하셨다.) 평생 신앙을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 때는 정말 필요가 없는 지식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떤 문화를 이해하거나 스스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서 짱구를 돌려볼 때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다.